[TK저널] #세상구경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느덧 반세기에 가깝습니다. 그 긴 세월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동기생 아홉 명이 경남 함양으로 짧은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구요. 그냥 맛있는 점심이나 먹고 함양의 명승지나 들릴 계획이었지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몰랐습니다.
그때 맺은 친구관계가 50여년이나 이어질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젊은 시절에는 다양한 인간관계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나이가 들면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동기생들의 50년 넘게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요. 주변에서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한번씩 들리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갈만한 곳을 여러곳 검색하다가 서암정사(瑞庵精舍)를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절 하나쯤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요. 막상 도착해서 한바퀴 돌아보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묵직한 세월이 느껴지는 고찰은 아니구요. 오히려 이 절에서 가장 마음을 붙잡은 것은 한 스님의 집념과 정성이었습니다.
네이버에서 서암정사를 소개하는 글을 찾아 봤습니다. 이렇게 소개했더군요.
"칠선계곡 초입에 자리한 서암정사는 자연 암석과 어우러진 독특한 사찰이다.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벽송사를 재건한 원응스님의 노력으로 완성된 이곳은 지리산의 장엄한 산세를 배경으로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조각법당이 장관을 이룬다. 사찰 입구의 대방광문을 지나면 바위에 조각된 사천왕상과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석굴법당이 나타난다.
도량 위편에는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광명운대와 수행 공간인 사자굴 등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단한 화강암을 조금씩 파내고, 그 안에 부처를 모셨다. 벽면에는 수많은 불교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서암정사 석굴법당의 입구입니다.
원응(元應) 스님이 6·25 한국전쟁으로 지리산에서 희생된 수많은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만든 법당이라고 합니다.
(석굴법당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서암정사에서 제공하는 사진을 올립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기계로 쉽게 뚫은 것도 아닌 것 같고, 한두 해에 완성된 것도 아닌 듯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가 돌덩이속을 법당으로 만들었군요. 바위속이 불국토(佛國土)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암정사는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위에 새겨진 불상과 조각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듯 했습니다.
또 절 마당에는 특이한 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황목련이라고 하는군요. 잘 생긴 소나무와 바위들, 절집 너머로 펼쳐지는 장엄한 지리산의 능선도 볼거리입니다.
서암정사를 내려와 돌아오는 길은 오도재를 넘었습니다. 승용차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산을 오르자 지리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과 산이 겹겹이 포개지고, 깊은 골짜기에는 뭉게구름이 낮게 깔렸습니다.
오도재(773m)는 한자로 쓰면 오도치(悟道峙)로, 즉 ‘도를 깨우친 고개’라는 뜻이라지요? 마천면 영원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는데, 고려·조선 초기부터 오도재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도재를 넘어 한참 내려오면 함양 최고의 명소인 지안재가 나타납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꼽힐 만큼 멋지고 매력적인 길이지요.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서 감상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데 우리 일행은 김천까지 갈 길이 멀어서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가끔은 바이크를 타는 젊은이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우리들의 세상구경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양군 마천면 서암정사와 오도재, 지안재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새겼습니다.